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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자 요시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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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간자 요시쿠니는 일본 제국의 관료로, 기후현 출신으로 도쿄 제국대학 법학과를 졸업했다. 1917년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고 1918년 조선총독부 시보로 시작하여, 평안남도 재무부장, 강원도 경찰부장, 경성부윤, 경기도 지사 등을 역임했다. 1940년 퇴직 후 조선방송협회 회장을 지냈으며, 해방 이후 이소자키 산업 고문을 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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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자 요시쿠니
기본 정보
이름감자 요시쿠니
출생1888년 11월
사망1960년 10월 28일
출생지가가와현
경력
학력도쿄 제국대학 법학부 졸업
직업내무관료
주요 경력미야기현 경찰부장
시즈오카현 경제부장
홋카이도청 재정부장
후쿠오카현 내무부장
사이타마현 내무부장
가고시마현 지사
히로시마현 지사
귀족원 의원

2. 생애

기후현에서 가와카미 데이조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간자 요시타카의 양자가 되었다.[1] 도쿄 제국대학 법학과 정치과를 졸업하였으며,[1] 재학 중인 1917년에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였다.[1]

1917년 문관 고등시험에 합격하고 1918년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 법률과를 졸업한 직후 총독부 시보(試補)로 조선에 건너왔다.[1] 도 사무관, 총독부 사무관, 평안남도 재무부장, 강원도 경찰부장, 총독부 비서관 겸 사무관을 지냈다.[1] 1929년 구미 각국에 출장하였다.

귀국 후 1929년 11월 경무국 위생과장에 임명되었고, 1930년 4월에는 전라남도 경찰부장, 11월에는 함경남도 내무부장이 되었다. 1932년 12월 강원도 내무부장, 1934년 5월 평양세무감독국장이 되었다. 1935년 7월 1일, 총독부 세무감독국장이 되었다.

1936년에 경성부윤으로 임명되었고, 1937년부터 1940년까지 경기도지사를 역임했다.

1940년 퇴직한 이후 조선방송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해방 이후 이소자키 산업 고문을 맡았다.

2. 1. 초기 생애 및 교육

간자 요시쿠니는 기후현에서 가와카미 데이조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간자 요시타카의 양자가 되었다. 도쿄 제국대학 법학과 정치과를 졸업하였으며, 재학 중인 1917년에 고등문관시험에 합격하였다.

2. 2. 조선총독부 관료 경력

간자 요시쿠니는 1917년 문관 고등시험에 합격하고 1918년 도쿄 제국대학 법과대학 법률과를 졸업한 직후 총독부 시보(試補)로 조선에 건너왔다. 도 사무관, 총독부 사무관, 평안남도 재무부장, 강원도 경찰부장, 총독부 비서관 겸 사무관을 지냈다. 1929년 구미 각국에 출장하였다.

귀국 후 1929년 11월 경무국 위생과장에 임명되었고, 1930년 4월에는 전라남도 경찰부장, 11월에는 함경남도 내무부장이 되었다. 1932년 12월 강원도 내무부장, 1934년 5월 평양세무감독국장이 되었다. 1935년 7월 1일, 총독부 세무감독국장이 되었다.

1936년에 경성부윤으로 임명되었고, 1937년부터 1940년까지 경기도지사를 역임했다.

2. 3. 퇴직 이후

1940년 퇴직한 이후 조선방송협회 회장을 역임했다. 해방 이후 이소자키 산업 고문을 맡았다.

3. 비판 및 논란

3. 1. 친일 행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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